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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추노 경험기 [2편] - "좋소 탈출기"

수박 겉핥기. 2022. 4. 17.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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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추노 경험기 [2편] - "좋소 탈출기"

때는 바야흐로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4년간 열심히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리저리 여행이나 다니며 놀다가 노는 것도 지겨워졌을 때쯤 일자리를 알아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집과 5분 거리에 있는 회사를 발견한다. 평소 출, 퇴근 시 봐왔던 회사이기도 했고 전에 다니던 회사 동료가 이곳에 다녔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었다.

물론 그때는 별 관심이 없었던 회사라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서 회사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했지만 일단 출퇴근 거리가 가까워서 입사 지원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때가 내 인생의 또 한 번의 실수가 될지 상상도 못 했다. 이 회사의 대략적인 정보는 이러했다.

1. 격주 5일 근무.
2. 출근: 09:00, 퇴근: 18:00.
3. 월급: 회사 내규에 따름.
4. 출장 업무.

좋소 입사부터 탈출까지 이야기.

좋소들이 대부분 그렇듯 사장과 그 회사의 메인급 직원이 면접을 보더라. 자기소개 같은 건 당연히 없었고 업무적인 부분을 조금 물어봤고 희망급여를 물어보길래 180만 원 정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직장에서 세후 160만 원 정도를 받았기에 조금 더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말했더니 알겠다는 분위기로 넘어가더라.

여하튼 그 후 사장 자랑을 10분 정도 듣고 면접이 끝이 났다. 이틀 뒤쯤 연락이 왔고 급여는 170만 원 정도인데 생각 있냐고 물어보더라.

일단 전 직장보다는 많으니 ok 하고 출근했다. 나중에 월급 받아보니 세전 급여가 170만 원이었다. 확인 제대로 안 한 내 잘못이지 누굴 원망하리.

출근하니 조직 구성원은 나 포함 5명이었다.
사장: 낚시 좋아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는 할아버지.

과장: 자기 말로는 이쪽 계열 사업하다가 잘못돼서 들어왔다고 하던데 그다지 아는 게 없어 보임. 왜 망했는지 알 거 같음.

대리: 사장하고 가장 오래 일한 직원. 열정도 없고 욕심도 없음. 그냥 좋소에 특화된 인재로 보였음. 나도 계속 다니다 보면 이렇게 됐을 듯.

주임: 경리 업무를 보고 있는 여자였으며, 그때 당시 20대 후반 정도의 나이였으며, 엄청난 골초였던 걸로 기억함.

여하튼 업무는 일주일만 배우면 되는 수준이었으나, 막노동 수준의 체력이 필요했다. 무거운 장비를 산에 짊어지고 올라가야 하는 일이라서 한 달 만에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이런 일을 하고 이 급여를 받을 거면 차라리 막노동을 하지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기 시작했다.

또한 경상도 또는 전라도를 일주일에 한 번씩은 출장 다녔다. 상황에 따라 1박을 해야 되는 상황도 많았고 퇴근 시간이 밤 10시가 넘는 경우도 많았다. 좋소 답게 연장근무 수당 같은 건 없었다.

그렇게 퇴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쯤 퇴사를 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 하나가 터진다. 사장과 함께 나를 면접 본 과장이 작업한 현장에서 문제가 생겨 일요일 급하게 수리 요청이 왔고 과장은 일이 있어 못 갈 것 같다며 나에게 대신 가달라고 부탁하더라.

물론 돈도 안 나오는 근무였지만 너무 간절히 부탁하길래 어쩔 수 없이 대신 처리해주고 왔다.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하니 사장과 경리가 출근해 있더라.

사장은 출근한 나를 보더니 일을 어떻게 했길래 자기에게 이런 연락이 오냐며 신경질을 내더라. 나는 어제 내가 처리한 부분이 잘못된 줄 알고 어떤 부분이 잘못됐길래 그러시냐고 물으니 처음부터 설치를 제대로 했으면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거 아니냐며 화를 내더라.

나는 쉬는 날 돈도 안 받고 출근해 일한 것도 짜증 나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니 혈기왕성한 시기에 참기 힘들겠더라.

바로 나는 사장에게 내질렀다. 내가 일으킨 문제도 아니고 쉬는 날 출근해서 처리한 사람한테 이건 아니지 않냐 라는 말을 한 뒤 집으로 와버렸다.

몇 시간 뒤 과장에게서 전화가 왔고 사장이 너무했다면서 위로를 하더라. 그러면서 다시 출근할 생각 없냐고 물어보더라. 나는 과장님이나 열심히 다니라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중에 든 생각인데 과장이라는 인간이 사장한테 내가 저지른 실수라고 말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더라. 함부로 사람을 의심하면 안 되지만 그 사람이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여하튼 그렇게 나의 좋소 탈출기는 성공했다.

수박 겉핥기의 마무리.

지금 생각해보면 직장인이라면 충분히 참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긴 한데 그때 그만둔 것이 나에게 있어 최고의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 그만두지 못했다면 지금의 회사에 들어오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